여는 글 · 흩어진 팁과 하나의 모델
한 챕터를 읽는다. 문장은 매끄럽고, 막히는 데 없이 끝까지 미끄러진다. 책을 덮으며 '이해했다'고 느낀다. 그리고 일주일 뒤, 누군가 그 내용을 물으면 손에 잡히는 게 없다. 분명히 읽었고 분명히 알아들었는데, 남은 것이 없다. 같은 챕터를 끙끙대며 읽은 옆자리 사람은 정작 그 내용을 꺼내 쓴다. 매끄럽게 읽힌 쪽은 비었고, 더듬댄 쪽은 남았다.
이 어긋남을 설명해 달라고 하면, 우리가 가진 답은 대개 팁의 목록이다. 시험을 자주 봐라. 몰아서 하지 말고 나눠서 해라. 한 유형만 풀지 말고 섞어서 풀어라. 밑줄만 긋지 말고 덮고 떠올려라. 저마다 그럴듯하고, 어떤 것은 서로 어긋나는 것처럼 들리며, 무엇 하나 '왜 그런지'와 '언제 안 듣는지'를 일러 주지 않는다. 팁은 효과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데, 목록만으로는 그 경계가 어디인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팁을 외우고, 자기에게 맞는 것을 감으로 고르고, 대개 틀린다.
이 책은 팁의 목록을 하나 더 보태는 대신, 그 팁들이 흘러나오는 모델 하나를 세운다. 시험이 왜 듣는지, 언제 듣지 않는지, 나눠 공부하기와 섞어 풀기가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지 다른 뿌리에서 나오는지, 이런 물음들의 답이 하나의 구조에서 따라 나오게 하는 것이 목표다. 모델을 손에 쥐면, 팁은 외울 목록이 아니라 그 모델의 작동에서 읽어 내는 결과가 된다.
표면은 같고 깊이만 다른 상태
매끄럽게 읽혔는데 남지 않는 그 어긋남은 기분 탓이 아니라 측정되는 현상이다. McNamara와 동료들이 1996년에 한 실험이 그것을 정면으로 다뤘다. 학생들에게 같은 과학 텍스트를 두 버전으로 읽혔다. 한 버전은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을 빠짐없이 명시한 매끄러운 글이고, 다른 버전은 그 연결에 일부러 빈틈을 남겨 독자가 스스로 메우게 한 글이다. 읽고 난 뒤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를 쟀다. 하나는 글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떠올리는 회상 시험, 다른 하나는 배운 것을 새 상황에 적용하고 추론해야 푸는 시험이다.
배경지식이 있는 독자들에게서, 빈틈 있는 글로 공부한 쪽과 매끄러운 글로 공부한 쪽은 회상 시험에서 똑같은 점수를 받았다. 두 쪽이 갈린 것은 배운 것을 새 상황에 적용하고 추론하는 시험에서였고, 거기서는 빈틈 있는 글로 공부한 쪽이 더 나았다. 빈틈이 독자에게 연결을 스스로 추론하게 강제해 더 깊은 이해를 남긴 것이다. 다만 이 이점은 빈틈을 메울 배경지식을 가진 독자에게 한정됐다.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는 메울 재료가 없어, 거꾸로 빈틈없이 매끄러운 글이 나았다.
같은 학생, 같은 텍스트인데도, 회상 시험만 확인한 사람은 "두 글에 차이가 없다"고 결론 내리고 추론 시험으로 확인한 사람은 "한쪽이 훨씬 깊이 배웠다"고 결론 내린다. 매끄럽게 읽혔는데 남은 게 없다는 경험이 바로 이 빈틈에 들어앉아 있다. 우리는 표면을 보고 '이해했다'고 적는데, 학습으로 남는 것은 그 표면이 가리지 못하는 깊이 쪽이다.
우리 자신의 계기판이 거짓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읽는 동안 '이만하면 됐다'고 느끼는 그 감각은 무엇을 재고 있는가. 그 감각이 재는 것은 깊이가 아니다. 지각적 비유창성을 다룬 한 메타분석이 이를 보여 준다. 글을 일부러 읽기 어려운 흐릿한 글꼴로 제시하면, 나중에 기억나는 양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회상에 미친 효과는 사실상 영(0)이었다. 그런데 학습자가 '내가 이걸 얼마나 배웠나'를 스스로 매긴 판단은 뚜렷하게 내려갔다. 읽기 힘들면 덜 배웠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덜 배운 것은 아니고, 매끄럽게 읽히면 더 배웠다고 느끼지만 그 느낌만큼 더 배운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학습의 척도로 삼는 그 '수월한 느낌'은 글이 얼마나 부드럽게 처리됐는지를 잴 뿐, 그 글이 머릿속에 무엇을 남겼는지는 재지 못한다.
그래서 매끄럽게 읽힌 글이 비어 있어도 우리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알아챌 계기판이 매끄러움을 학습으로 잘못 읽기 때문이다. 더듬대며 읽은 사람이 더 많이 남기고도 '잘 못했다'고 느끼고, 술술 읽은 사람이 텅 비고도 '잘했다'고 느낀다. 자기 학습 상태를 직접 들여다보는 창은 우리에게 없고, 가진 것은 수월함이라는 어림자 하나뿐인데, 그 어림자가 체계적으로 거짓을 가리킨다.
팁의 목록이 위태로운 이유가 이것이다. 어떤 팁이 듣는지를 우리는 느낌으로 판정하는데, 그 느낌이 믿을 게 못 된다. 다시 읽으면 매끄러워지니 '안다'고 느껴 거기서 멈추고, 덮고 떠올리는 일은 버벅대니 '비효율적'이라 느껴 피한다. 정작 남는 것은 버벅댄 쪽인데도. 느낌을 따라가면 가장 잘 배우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피하게 된다. 느낌 대신 기댈 것이 필요하고, 그 자리에 놓을 것이 모델이다.
이 책이 세우는 모델
머릿속을 두 개의 저장소로 그린다. 하나는 지금 처리 중인 것이 잠깐 머무는 좁고 빠른 작업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한번 자리 잡은 것이 오래 쌓이는 넓은 저장고다. 둘은 성격이 정반대다. 이 둘 사이를 정보가 오가는 길에 세 가지 과정이 놓인다. 작업 공간에서 지은 것을 저장고에 써넣고, 써넣은 것을 시간에 걸쳐 굳히고, 굳은 것을 다시 꺼내 읽는다. 두 저장소와 세 과정, 이것이 이 책이 끝까지 끌고 갈 모델의 전부다.
이 구조에서 학습의 현상들이 따라 나온다. 백지 시험이 다시 읽기보다 잘 남는 까닭은 꺼내 읽는 과정이 저장고에 미치는 효과에서 나오고, 나눠 공부하기가 몰아 하기보다 나은 까닭은 그 사이에 낀 망각이 다음 꺼내기를 힘들게 만드는 데서 나오며, 같은 글이 누구에게는 쉽고 누구에게는 이해 불가능한 까닭은 좁은 작업 공간의 한계에서 나온다. 배운 것이 새 상황으로 잘 옮겨 가지 않는 현상조차, 저장고가 무엇을 단서로 기억을 찾는지에서 따라 나온다. 따로따로 외워야 했던 팁들이, 한 모델의 서로 다른 얼굴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은 모델을 먼저 세우고 현상을 거기서 끌어내는 순서로 간다. 앞쪽 장들은 두 저장소가 각각 어떻게 생겼고 세 과정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를 세우는 데 쓰이고, 시험과 분산과 섞어 풀기가 그 구조의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그 뒤에 온다. 당장 써먹을 요령보다 구조가 먼저인 셈이다.
읽는 동안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매끄럽게 읽힌다는 느낌은 이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남았다는 증거가 아니다. 그것은 이 책이 처음부터 의심하라고 말하는 대표적인 신호일 뿐이다. 반대로, 어느 대목에서 걸려 되짚게 된다면, 그 걸림은 손해가 아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