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표상은 묶이며 자란다

장기기억에는 무엇이 어떤 모양으로 쌓여 있는가. 머릿속이 다루는 단위를 앞에서 표상이라 불렀는데, 그 표상 하나를 집어 들고 안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알갱이가 아님이 드러난다. '빨간 사과'라는 표상이 그렇다. 한 덩어리로 느껴지지만, 그 안에는 '빨강'이라는 색과 '사과'라는 과일이 어떤 관계로 묶여 있다. 색을 떼어 내면 그냥 사과가 되고, 과일을 떼어 내면 그냥 빨강이 된다. 표상은 알갱이가 아니라 묶음이다.

표상이 더 작은 표상들의 묶음이고 그 작은 표상들도 다시 묶음이라면, 장기기억에 쌓인 표상들은 서로가 서로의 재료가 되어 촘촘히 이어져 있는 셈이다. 표상 하나는 더 작은 표상들을 묶어 이뤄지고, 동시에 더 큰 표상의 재료로 들어간다. 이렇게 표상들이 위아래로 묶이고 옆으로 이어진 전체를 하나의 연결망으로 그리는 것이 이 책의 모델이다. 이 연결망이 머릿속의 모습 그대로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보면 장기기억에 무엇이 쌓이고 그것을 어떻게 찾아 꺼내는지가 한 구조로 설명되므로, 끝까지 이 그림을 쥐고 간다.

알갱이와 합성 표상

연결망에는 두 종류의 표상이 있다. 하나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알갱이다. 글자의 한 획, 어떤 소리, 어떤 색처럼, 지각에서 곧장 온 가장 밑바닥의 표상이 여기 해당한다. 이것을 원시 노드라 부른다. 연결망에서 더 아래로 풀리지 않는 끝점이다.

다른 하나는 그 알갱이들, 혹은 이미 만들어진 다른 표상들을 한데 묶어 만든 합성 표상이다. '빨간 사과'는 '빨강'과 '사과'를 묶은 합성 표상이고, '민수가 사과를 먹었다'라는 한 생각은 '민수'와 '사과'와 '먹다'를 특정 관계로 묶은 또 하나의 합성 표상이다. 여러 표상을 한 관계로 묶은 이 합성 표상을, 더 정확한 이름이 필요할 때는 하이퍼에지라 부른다. 둘만이 아니라 셋이고 넷이고 여러 표상을 한꺼번에 거는 묶음이라는 뜻이다.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합성 표상이 하위 표상들을 특정 관계로 엮은 묶음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표상이 자라는 방식이 보인다. 한번 만들어진 합성 표상은 그 자체로 다시 더 큰 합성 표상의 재료가 될 수 있다. 획들이 묶여 글자가 되고, 글자들이 묶여 단어가 되며, 단어들이 묶여 구가 되고, 구들이 묶여 문장 하나의 의미가 된다. 아래층의 표상이 위층 표상의 구성원으로 들어가고, 그 위층이 다시 더 위층의 재료가 되는 식으로 위계가 쌓인다. 이 풀어 내려가기는 어디선가 멈춰야 하는데, 그 바닥이 바로 더 못 쪼개는 원시 노드다. 무언가를 새로 안다는 것은 이렇게 새 합성 표상 하나가 이미 있던 표상들 위에 더해져 연결망이 한 가닥 자라는 일이다. 장기기억이 넓어진다는 것의 정체가 이것이다.

묶은 것이 곧 찾는 길

연결망으로 그리는 진짜 이득은 다음 한 가지에서 나온다. 한 합성 표상을 이루는 구성원이, 동시에 그 합성 표상을 불러내는 단서가 된다는 것이다.

어떤 표상 X가 표상 A와 B와 C를 묶은 합성 표상이라고 하자. 그러면 A가 켜지든 B가 켜지든 C가 켜지든, 그 켜짐이 X로 번져 간다. '빨간 사과'는 '빨강'과 '사과'를 구성원으로 거는데, 빨간색을 보아도, 사과라는 말을 들어도, 그 표상이 함께 깨어난다. 한 표상이 켜지면 그것을 구성원으로 가진 표상들로 활성이 번져 가는 이 현상은 기억 연구에서 활성 전파라는 이름으로 오래 다뤄져 왔고, 인출을 설명하는 표준적인 틀로 자리 잡았다.

이 한 가지에서 중요한 결론이 따라 나온다. 한 표상을 어떤 구성원들에 걸어 두느냐가, 나중에 그 표상으로 닿는 길이 어디에 나는지를 정한다는 것이다. 많은 단서에 걸어 두면 그만큼 여러 길로 닿을 수 있고, 외딴 단서 하나에만 걸어 두면 그 단서가 켜질 때만 닿는다. 무언가를 기억에 넣는 일이 단순히 '저장'에 그치지 않고 '나중에 어디로 찾아갈지'를 함께 정하는 일인 까닭이 여기 있다. 넣을 때 무엇과 엮어 두었느냐가, 꺼낼 때 어느 단서가 그것을 불러올 수 있느냐를 미리 결정한다.

이 길에는 그늘도 있다. 한 표상이 여러 합성 표상의 구성원으로 동시에 걸려 있으면, 그것이 켜질 때 활성이 여러 갈래로 잘게 갈라져 어느 하나도 또렷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 가지 단서에 딸린 것이 많을수록 그 단서로 특정 하나를 짚어 내기가 오히려 더 더뎌지는 이 현상은 실험으로 거듭 확인됐다. 그래서 흔하디흔한 단서에 표상을 걸어 두면 나중에 그것을 콕 집어 꺼내기 어렵고, 그 표상에만 거의 매인 독특한 단서에 걸어 두면 한 번에 또렷이 닿는다. 어디에 거느냐가 닿을 수 있느냐를 정한다는 원리의 반대쪽 면이다. 이 갈라짐과 경쟁이 망각과 간섭의 뿌리가 되는데, 그 이야기는 장기기억의 또 다른 면을 세운 다음에 펼친다.

같은 연결망을 작업공간도 다룬다

장기기억을 연결망으로 그렸지만, 이 연결망은 장기기억만의 것이 아니다. 앞 장에서 작업공간과 장기기억이 같은 단위인 표상을 주고받는다고 했는데, 작업공간이 하는 일도 결국 이 연결망 위에서 벌어진다. 작업공간은 연결망에서 표상 몇 개를 불러와 올려놓고(인출), 그 위에서 여러 표상을 새로 묶거나(형성), 떠 있는 것을 붙들어 둔다(유지). 새로 묶는 일이 곧 연결망을 한 가닥 키우는 일이고, 그렇게 키운 것이 장기기억에 남으면 학습이 된다.

그래서 한 표상이 작업공간에서 한 자리만 차지하면서도 담는 정보의 양이 천차만별인 까닭도 이 연결망으로 설명된다. 작업공간에 올라온 표상 하나가 원시 노드에 가까운 얕은 것이면 담긴 정보가 적고, 수많은 하위 표상을 거느린 깊은 합성 표상이면 그 아래 위계 전체를 한 자리에 압축해 싣는다. '감'이라는 글자 하나를 올리는 것과 '늦가을 시골집 마당의 감나무'라는 깊은 합성 표상 하나를 올리는 것이 작업공간에서는 똑같이 한 자리지만, 실어 나르는 정보의 크기는 비교가 안 된다. 같은 한 자리에 얼마나 깊은 합성 표상을 얹느냐가 사람마다 다른 이 차이가, 좁은 작업공간을 두고 벌어지는 모든 이야기의 씨앗이 된다.

장기기억이 표상들의 연결망이고, 합성 표상의 구성원이 곧 그것을 불러내는 단서라는 것, 이것이 장기기억의 구조다. 그런데 구조만으로는 아직 반쪽이다. 같은 연결망에 같은 표상이 걸려 있어도, 어떤 것은 지금 당장 또렷이 떠오르고 어떤 것은 분명히 거기 있는데도 닿지 않는다. 무엇이 장기기억에 있느냐와 그것에 지금 닿을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라고 앞에서 흘려 두었는데, 이제 그 다른 문제를 정면으로 본다. 한 표상에 걸리는 두 가지 힘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