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 스키마는 비교에서 온다

구조가 단서가 되지 못해 먼 전이가 막힌다면, 길은 하나다. 구조 자체를 표면에서 떼어 내, 그것만으로 따로 켜질 수 있는 하나의 노드로 장기기억에 저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표면에서 분리되어 독립된 합성 표상으로 자리 잡은 구조를 스키마라 부른다. 스키마가 정립되어 있으면 소재가 무엇이든 그 구조에 해당하는 상황에서 그것이 불려 나온다. 그런데 이 한 문장에 물음이 둘 숨어 있다. 그 구조 노드는 어떻게 생기며, 일단 생긴 뒤에는 새 상황에서 무엇이 그것을 다시 켜는가. 둘을 차례로 푼다.

비교가 구조를 빚는다

구조 노드는 사례 하나를 아무리 깊이 파도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요새 이야기 하나만 깊이 들여다보면, 거기서 남는 것은 군대와 길과 요새에 묶인 표상이다. '한 점에 모음'이라는 구조는 그 구체적 소재에 들러붙은 채라, 표면이 다른 종양 문제에서는 켜지지 않는다. 한 사례에 깊이 빠질수록 오히려 그 사례의 표면에 더 단단히 묶이는 역설마저 있다.

구조를 표면에서 떼어 내는 일은 비교에서 일어난다. 표면이 다른 둘 이상의 사례를 작업공간에 나란히 올려놓고 견주면, 한쪽의 군대·길·요새와 다른 쪽의 광선·종양·신체는 서로 어긋나 겹치는 데가 없다. 그러나 둘을 짝지어 맞춰 보는 동안 같은 자리에 포개지는 것이 있다. 나누어 보냄과 한 점에 모임이라는 관계가 양쪽에서 같은 역할을 맡는다. 겹치지 않는 표면 노드들은 서로를 상쇄하고, 같은 역할로 포개지는 관계만 짝이 맞아 남는다. 이 남은 관계의 뼈대를 한 단위로 묶어 인코딩하면, 어느 표면에도 매이지 않은 구조 노드가 비로소 선다. 비교란 두 사례의 다른 살을 서로 깎아 내고, 같은 자리에 포개지는 관계만 추려 내는 정렬 작업이다.

그래서 같은 시간을 들인다면, 사례 하나를 깊이 파는 것보다 표면이 다른 사례 둘 이상을 견주는 편이 전이 가능한 표상을 남긴다. 하나만 깊이 판 학습자는 그 표면에 묶인 표상을 얻어 비슷한 문제에만 닿고, 여럿을 견준 학습자는 표면을 벗은 구조 노드를 얻어 낯선 표면에서도 그것을 불러낸다. 초보가 문제를 그 소재, 곧 '이건 물탱크 문제'나 '저건 기차 문제'로 갈무리하고, 전문가가 같은 문제들을 그 구조, 곧 '이건 비율 문제'로 갈무리하는 차이가 여기서 나온다.

무엇이 그 노드를 켜는가

구조 노드를 세워 둔 것만으로는 절반밖에 풀리지 않는다. 어떤 노드든 그 구성원이 작업공간에 켜져야 인출되는데, 구조 노드의 구성원은 군대나 광선 같은 대상이 아니라 '힘을 여러 갈래로 나눔'이나 '한 점에 모음' 같은 관계다. 그래서 종양 문제를 만나 광선과 종양과 신체가 작업공간에 떠오르는 것만으로는 이 노드가 켜지지 않는다. 그 표면 대상들은 구조 노드의 구성원이 아니어서 겹치는 데가 없다. 표면이 다르면 구조에 닿지 못한다던 말이 바로 이 자리의 이야기다.

그러면 그 노드를 켜는 단서는 무엇인가. '여러 갈래로 나눠 한 점에 모은다'는 스키마도 결국 더 단순한 관계들을 묶은 합성 표상이고, 그 구성원은 '나누다'와 '모으다'다. 어떤 노드든 구성원이 작업공간에 켜져야 인출되니, 이 스키마를 켜려면 '나누다'와 '모으다'가 작업공간에 떠 있어야 한다. 그러니 물음은 하나로 좁혀진다. 새로 마주친 문제에서 그 '나누다'와 '모으다'를 작업공간에 올릴 수 있는가, 이것이 스키마를 켜느냐 마느냐를 가른다.

그런데 문제를 만나 거저 떠오르는 것은 표면 대상뿐이다. 광선·종양·신체는 보면 곧장 뜨지만, '나누다'도 '모으다'도 그 표면에 적혀 있지 않다. 그 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 광선을 여러 줄기로 갈라 한 점에 모으면 어떨까를 그려 볼 때라야 비로소 작업공간에 오른다. 표면을 받아 적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너머의 관계까지 세우는 처리라야 구성원이 서는 것이다. 이 처리는 거저 되지 않고 작업공간을 들여야 한다.

그렇게 '나누다·모으다'가 작업공간에 서고 나서야, 비로소 그 둘을 구성원으로 가진 스키마로 활성이 번져 노드가 켜진다. 구조 노드가 위에서 먼저 얹혀 문제를 정리해 주는 것이 아니다. 아래에서 구성원 관계들이 떠오른 결과로 노드가 켜지고, 그렇게 켜진 노드가 비로소 문제 전체를 한 구조로 되비춘다. 정리는 인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단서는 늘 작업공간에 실제로 떠 있는 그 구성원 관계들이고, 노드는 그 뒤에 온다.

'나누다'와 '모으다'는 누구나 아는 관계지만, 그것을 새 문제에 끌어올려 한 구조로 받는 데서 전문가와 초보가 갈린다. 갈림은 둘이다. 하나는 그 둘을 묶은 합성 표상을 가졌느냐다. 스키마가 없으면 두 관계가 떠올라도 받아 줄 노드가 없어 따로 떠다닐 뿐이고, 스키마가 있으면 그 짜임이 곧장 한 구조로 인출된다. 다른 하나는, 표면 너머의 관계를 세워 구성원을 올리는 그 처리에 익숙한가에 달려있다. 추상적 구성원을 작업공간에 올리는 일은 비교로 스키마를 빚을 때도 똑같이 했어야 하는 일이라, 그것을 여러 번 치른 사람일수록 새 문제에서도 손쉽게 구성원을 세운다. 전문가가 낯선 문제에서 구조를 곧장 알아보는 것은 남다른 눈이 아니라, 받아 줄 스키마를 갖춘 데다 구성원을 세우는 일이 손에 익은 덕이다.

이것이 그토록 바라는 먼 전이가 왜 드문지를 마저 말해 준다. 새 문제에서 거저 떠오르는 것은 언제나 표면이고, 구성원이 될 관계는 흔히 문제가 아니라 그 풀이 쪽에 숨어 있어, 어떻게 풀지 따지기 전에는 작업공간에 서지도 않는다. 표면이 닮은 옛 문제가 손쉽게 끌려 나와 거기서 멈추면, '나누다·모으다'는 끝내 떠오르지 않고 가진 스키마마저 잠든 채 남는다. 누가 아까 그 이야기를 보라 일러 주거나 스스로 작정하고 구조를 따지는 일은, 바로 그 구성원을 작업공간에 끌어올리는 일이다. 가진 구조를 정작 켤 구성원을 올리지 못해 지나치는 그 일이, 먼 전이의 어려움이다. 한번 경지에 오른 사람은 갈수록 수월하게 구조를 보게 되는 까닭이, 이 맞물림에 있다.

구체성의 양날

이 색인의 특성에서 구체적인 예시의 두 얼굴이 나온다. 추상적인 규칙을 가르칠 때 친근한 구체 사례를 드는 것은 흔하고 또 자연스럽다. 처음 보는 규칙도 익숙한 사례에 얹으면 걸 단서가 많아 머리에 들어오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풍부한 표면이 발목을 잡는다. 한 구체 사례로만 익힌 규칙은 그 사례의 표면 노드에 묶여 버려, 표면이 다른 새 문제에서는 불려 나오지 않는다. 분수 나눗셈을 계량컵으로만 익힌 학습자가 계량컵이 등장하지 않는 문제를 전혀 다른 것으로 보는 일이 그렇다. 규칙은 분명히 배웠는데, 그것이 계량컵이라는 표면에 갇혀 다른 자리에서 안 켜진다.

반대로 구체적 살을 걷어 낸 추상적인 기호로 익히면, 묶일 표면이 적어 여러 표면으로 옮겨 가기는 쉽다. 어느 소재에도 매이지 않았으니 그만큼 두루 닿는다. 그러나 걸 단서가 빈약해 처음 익히기가 어렵다. 발 디딜 구체가 없어 추상이 허공에 뜨는 것이다. 구체는 진입을 돕되 전이를 막고, 추상은 전이를 돕되 진입을 막는다. 같은 색인 특성의 양면이다.

양날이라는 진단이 곧 처방의 방향을 일러 준다. 들머리에서는 구체 사례로 발을 들이게 하되, 거기 머물지 않고 표면이 다른 사례를 나란히 들어 비교하게 함으로써 구조를 표면에서 떼어 내야 한다. 구체로 들어와 비교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사례 하나를 떠먹이고 끝내면 그 표면에 갇히고, 여럿을 견주게 하면 표면을 벗는다.

줄곧 만나 온 한 부품

표면을 벗은 이 구조 노드는 이 책에서 처음 만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전문가가 작업공간의 좁은 자리를 적게 쓰며 체스 기보 한 판을 통째로 붙든 것은, 흩어진 낱낱을 한 단위로 묶어 본 덕이었다. 그 묶은 단위가 바로 표면을 벗은 구조 노드다. 글의 빈틈을 메워 머릿속에 상황의 모델을 세울 때 끌어다 쓴 배경지식도, 소재를 바꿔도 통하는 관계의 묶음, 곧 구조 노드였다. 작업공간을 아끼는 합성 표상으로도, 이해의 빈틈을 메우는 틀로도, 전이의 다리로도 쓰이는 그 하나를 우리는 줄곧 다른 자리에서 만나 온 것이다.

색인이 표면으로 걸린다는 이 한 가지 특성이 전이의 어려움을 낳고, 그 어려움을 넘는 스키마의 형성과 작동 방식을 정했다. 그런데 같은 특성이 또 다른 말썽을 낳는다. 한 표면 단서에 여러 합성 표상이 함께 걸려 서로 길을 다툴 때다. 그 다툼이 어떻게 인출을 흐리고 오개념을 끌어들이는지, 간섭의 이야기가 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