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 망각은 지움이 아니다

이십 년 전 전화번호가 지금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 한번 일러 주면 처음 외울 때와 비교가 안 되게 빨리 되살아난다. 만약 그 번호가 장기기억에서 깨끗이 지워졌다면, 되살리는 일도 처음부터 외우는 일만큼 더뎌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지워진 것이 아니라 닿는 길이 흐려져 있을 뿐이라고 봐야 이 빠른 되살아남이 설명된다. 망각의 정체를 다시 봐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흐려진 길, 남아 있는 표상

앞 장에서 한 표상에 두 힘이 걸린다고 했다. 지금 닿는 정도인 인출강도와, 인출강도가 얼마나 느리게 떨어지고 빨리 회복되는지를 정하는 저장강도다. 이 두 힘으로 보면, 망각은 장기기억에서 표상이 지워지는 일이 아니라 그 표상으로 가는 인출강도가 떨어지는 일이다. 표상도, 그것을 떠받치는 저장강도도 그대로 남아 있고, 다만 단서에서 그 표상으로 번지는 지금의 활성이 약해져 당장 닿지 못할 뿐이다.

그렇다면 그 활성은 왜 약해지는가. 표상이나 그 연결이 끊어져서가 아니다. 3장에서 한 단서에 여러 표상이 걸려 있으면 그 단서가 켜질 때 활성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같은 단서에 새것들을 자꾸 더 건다. 그러면 그 단서가 켜질 때 활성이 더 잘게 갈라져, 옛 표상에 돌아가던 몫이 줄어든다. 인출강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이렇게 단서의 활성이 경쟁자들에게 나뉘어 옛 표상에 닿는 몫이 묽어지는 일이다. 끊긴 것이 아니라 붐벼서 못 닿는 것이고, 그래서 시간 그 자체가 기억을 지운다기보다 그 시간 동안 쌓인 경쟁이 길을 가린다. 이 경쟁이 어디서 오고 무엇을 더 낳는지는 뒤에서 따로 본다.

그래서 잊은 것은 작은 단서 한 조각이나 짧은 재학습으로 곧 되살아난다. 길이 막혔을 뿐 목적지는 그 자리에 있으니, 길만 다시 트면 된다. 옛 번호가 한 번의 힌트에 살아나는 것, 오래 안 탄 자전거를 몇 바퀴 만에 다시 타는 것이 다 이것이다. 무언가를 '잊었다'는 말은 대개 '그것이 사라졌다'가 아니라 '지금 그것에 닿는 길이 흐려졌다'를 뜻한다. 미래의 되살아남이 갈리는 것은 보이지 않는 저장강도가 다르기 때문이고, 그래서 망각을 인출강도의 저하로만 정의한다.

한 번 떠올릴 때 두 힘이 함께 움직인다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떠올리면, 그 한 번의 인출이 두 힘을 함께 끌어올린다. 인출강도가 오르는 것은 앞서 본 저하의 정확한 반대다. 단서에서 그 표상으로 가는 길을 한 번 타고 지나가면 그 길이 굵어진다. 그런데 한 단서가 내보내는 활성의 총량은 정해져 있어, 한 길이 굵어지면 그 길로 가는 몫이 커지는 만큼 같은 단서에 걸린 경쟁자들로 가던 몫은 줄어든다. 인출이란 그렇게 경쟁자들에게 묽어지던 몫을 도로 빼앗아 오는 일이라, 망각이 갉아 가던 바로 그 몫을 되돌린다(인출강도 상승). 그리고 그 표상은 더 깊이 박힌다(저장강도 상승). 그런데 이 둘의 상승폭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엇갈려 맞물려 있다. 한쪽이 얼마나 오를지를 다른 쪽의 현재 값이 정한다. 이 엇갈린 맞물림이 학습의 거의 모든 것을 푸는 열쇠다.

맞물림의 한 방향은 이렇다. 인출강도가 한 번에 얼마나 오르는지는 그 표상의 저장강도가 정한다. 깊이 박힌 표상일수록, 한 번 떠올리면 더 높이 되살아나고 그 뒤로 더 천천히 떨어진다. 겉보기엔 다 잊은 것, 곧 인출강도가 거의 영으로 떨어진 것도 저장강도만 높으면 단 한 번의 재학습으로 금세 높이 회복된다. 옛 전화번호가 한 번의 힌트에 처음 외울 때보다 훨씬 빨리 살아나는 것이 정확히 이것이다. 인출강도는 바닥이었지만 저장강도가 높이 남아 있어서, 한 번의 인출이 그 저장강도에 비례해 인출강도를 크게 끌어올린 것이다. 재학습이 첫 학습보다 빠른 까닭이 여기서 나온다.

맞물림의 다른 방향이 더 중요하다. 저장강도가 한 번에 얼마나 오르는지는 인출하는 순간의 인출강도가 거꾸로 정한다. 떠올리는 순간 이미 술술 떠오르는 상태였다면, 곧 인출강도가 높았다면, 저장강도는 거의 오르지 않는다. 인출강도가 낮게 떨어진 뒤에 간신히 끌어올린 인출일수록 저장강도를 크게 키운다. 쉽게 떠오른 것은 깊이 박히지 않고, 힘들게 떠올린 것이 깊이 박힌다. 이것은 바람직한 어려움이라 불리는 학습 원리의 알맹이인데,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이 반비례 관계는 정밀하게 측정된 공식이라기보다, 여러 학습 현상을 정리하기 위해 이 모델이 세우는 정성적 원리다. 떨어진 만큼 힘들여 끌어올린 인출이 저장강도를 더 키운다는 방향은 거듭 확인되지만, 그 상승폭에 딱 떨어지는 비례상수가 매겨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학습의 비대칭

두 방향을 합치면 학습의 비대칭이 모습을 드러낸다. 인출강도와 저장강도는 서로 다른 조건에서 자란다. 인출강도는 지금 한 번 더 떠올리면 곧장 오르지만, 저장강도는 인출강도가 충분히 떨어진 뒤의 힘든 인출에서만 크게 오른다. 이 어긋남이 흔한 공부 습관 하나를 정확히 진단한다.

같은 자료를 쉬지 않고 거듭 읽거나 거듭 떠올리는 몰아치기가 그렇다. 이때는 인출강도가 이미 높은 상태에서 또 인출하는 셈이다. 매번 술술 인출되니 그 순간의 수행은 좋고 '잘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그러나 인출강도가 높을 때의 인출은 저장강도를 거의 키우지 못한다. 인출강도만 잠깐 더 올렸을 뿐, 정작 오래 남기는 저장강도는 제자리다. 반대로, 한참 시간이 지나 인출강도가 떨어진 뒤에 다시 힘들여 떠올리면, 그 순간의 수행은 버겁고 더디지만 저장강도가 크게 오른다. 학습 순간에는 더 어렵게 느껴지지만, 저장강도도 함께 올리게 되므로 더 많이 남는다.

여는 글에서 본 거짓 계기판의 정체가 이로써 또렷해진다. 우리가 학습의 척도로 삼는 '수월한 느낌'은 인출강도를 비추는데, 정작 학습으로 남는 것은 저장강도다. 둘이 엇갈려 자라므로, 인출강도가 높아 수월하게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이 저장강도는 거의 자라지 않는 순간일 수 있다.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을 따라 몰아치기로 인출강도만 올리고, 버벅대는 힘든 인출은 피하는 일이 여기서 나온다. 느낌이 체계적으로 학습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 비대칭에서 학습법의 큰 줄기가 흘러나온다. 자료를 덮고 힘들여 떠올리게 하는 것, 시행과 시행 사이에 시간을 두어 인출강도를 일부러 떨어뜨리는 것, 이 모두가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전부 인출강도가 떨어진 자리에서 힘든 인출을 일으켜 저장강도를 키우는 일이다. 이 기법들을 제대로 펼치는 일은 뒤로 미루지만, 그 모두가 이 맞물림에서 도출된다.

다만 한 가지가 아직 비어 있다. 저장강도를 키우는 힘든 인출이든, 여러 표상을 새로 묶는 학습이든, 그 일은 모두 작업공간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작업공간은 좁고 휘발한다. 떠올리고 묶는 그 연산이 좁은 작업공간에서 실제로 어떻게 굴러가고, 그 좁음이 무엇을 가능하게 하고 무엇을 가로막는가. 장기기억의 두 힘을 세웠으니, 이제 그 힘이 작동하는 작업공간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