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 자원을 트는 지렛대들

자원이 학습에 보탬 없이 새는 몫을 줄이는 것이 학습 설계의 방향이라 했다. 이 방향을 더 다루기 좋게 만들려면, 작업공간에 걸리는 부담을 그 출처에 따라 갈라 봐야 한다. 같은 자원을 빨아들이는 부담이라도, 어디서 오느냐가 다르면 손쓸 방법도 다르기 때문이다.

부담의 두 출처

한 부담은 내용 자체에서 온다. 한 번에 관계 지어야 할 표상이 많고 위계가 깊을수록, 또 그 하위 표상이 한 단위로 갖춰져 있지 않아 즉석에서 지어 올려야 할수록 부담이 크다. 이것은 다루려는 내용이 정한 바닥이다. 미적분을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미적분은 본래 무겁고, 그 무게는 내용을 바꾸지 않는 한 줄일 수 없다. 이 내용 본연의 부담을 본질적 부하라 부른다.

다른 부담은 내용과 무관하게, 서툰 제시가 더한다. 풀이의 그림과 설명이 따로 떨어져 있어 눈이 둘을 오가며 맞춰야 하거나, 찾는 정보가 엉뚱한 데 흩어져 있어 모으느라 자원을 쓰는 경우다. 이 부담은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것을 담은 그릇이 나빠서 생기고, 그렇게 새는 자원은 어떤 학습으로도 남지 않는다. 이것을 외재적 부하라 부른다.

떠 있는 표상들을 묶어 새것을 짓는 합성 자체의 수고도 내용 본연의 무게를 처리하는 일과 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은 본질적 부하에 든다. 본질적 부하를 처리하는 데 쏟는 자원이 곧 합성에 드는 자원이고, 그 합성이 학습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담은 둘이다. 내용이 정한 본질적 부하와, 그릇이 더하는 외재적 부하다.

이렇게 가르면 처방이 하나로 모인다. 본질적 부하는 내용이 정한 바닥이라 직접 줄일 수 없고, 다만 하위 표상을 미리 갖추게 해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손댈 수 있는 것은 외재적 부하다. 그릇이 새게 하는 자원을 막아, 그 자원이 본질적 부하를 처리하는 쪽, 곧 합성하는 쪽으로 가게 하는 것. 학습 설계란 결국 이 일이다. 아래의 기법들은 저마다 이 분배를 특정 방향으로 트는 지렛대로 읽을 수 있다.

자원을 합성 쪽으로 모아 주는 지렛대

수학이나 물리 풀이를 가르칠 때, 문제를 스스로 풀게 하는 대신 완성된 풀이를 단계까지 펼쳐 보여 주고 공부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직접 풀게 하면 학습자는 다음 단계를 매번 장기기억에서 찾아(인출) 새로 지어야(형성) 한다. 그런데 아직 풀이 구조가 없는 초보에게 그 찾기는 있지도 않은 방법을 맨땅에서 더듬는 일이다. 떠올릴 무언가가 있어야 인출이 길을 다지는데, 초보에게는 다질 길조차 아직 없다. 그 헛더듬기와 짓기가 자원을 다 가져가, 정작 풀이의 짜임을 머리에 담을 여력이 남지 않는다. 펼쳐진 풀이를 주면 단계가 이미 놓여 있어, 학습자는 탐색과 인출의 부담을 덜고 구조를 따라 합성하는 데 자원을 쓸 수 있다. 외재적으로 새던 자원을 합성 쪽으로 모아 준 것이다. 다만 이 도움은 학습자의 상태에 매여 있다. 이미 그 풀이 구조를 가진 전문가에게는, 다 아는 단계를 일일이 읽고 자기 지식과 맞춰 보는 일이 오히려 군더더기가 되어, 발판이던 것이 외재적 부하로 뒤집힌다.

자료 중간중간에 질문을 끼워 넣는 방법도 자원의 향방을 튼다. "방금 그것은 왜 그런가"를 묻는 질문이 끼면, 학습자의 주의가 그 대목으로 돌아가 거기서 되짚는 깊은 처리가 일어난다. 그런데 작업공간의 자원은 한정돼 있으므로, 질문이 가리킨 부분이 깊이 처리되는 만큼 가리키지 않은 부분은 그만큼 얕아진다. 삽입 질문은 학습량을 새로 더하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쓸지를 재배분하는 일이다. 무엇을 묻느냐가 곧 무엇을 깊이 남기고 무엇을 흘려보낼지를 정한다.

자원을 일부러 더 쓰게 하는 지렛대

앞의 둘이 자원을 아껴 합성으로 모아 준다면, 거꾸로 자원을 일부러 더 쓰게 해서 남는 것을 바꾸는 지렛대도 있다. 여러 유형의 문제를 풀 때, 한 유형을 몰아서 풀지 않고 유형을 섞어 푸는 방법이 그렇다. 한 유형만 쭉 풀면 어느 문제든 유형이 이미 정해져 있어, 그 유형의 절차를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 반면 유형을 섞어 두면 매 문제에서 "이건 무슨 유형인가"부터 가려야 한다. 유형을 가려내는 추가 합성, 곧 변별이 얹힌다. 그런데 이 변별은 결국 문제라는 단서에 맞는 방법을 장기기억에서 끌어오는 인출이다. 몰아서 풀면 방법이 이미 정해져 손만 대면 되니 그 끌어오기를 건너뛰지만, 섞어 두면 매 문제마다 방법을 단서에서 새로 찾아 와야 한다. 이 찾아오기가 문제당 자원을 더 먹어 그 순간을 버겁게 만들고, 그 보상으로 문제의 특징이 풀이방법에 해당하는 표상을 부르는 단서로 다져진다. 몰아서 풀면 그 끌어오기가 없으니 부담은 작되 단서가 다져지지 않고, 섞어서 풀면 부담은 크되 단서가 다져진다. 그래서 비슷해 보이는 유형들을 단서로 갈라내는 것이 목표라면 섞는 편이, 한 절차를 매끄럽게 숙달하는 것이 목표라면 몰아서 하는 편이 낫다. 자원을 변별이라는 추가 합성에 쓸지 말지의 선택인 셈이다.

자원이 어디로 가느냐를 가르는 피드백

틀린 뒤에 주어지는 피드백도, 그것이 자원을 어디로 보내느냐에 따라 학습을 돕기도 하고 깎기도 한다. "여기서 부호를 놓쳤으니 이렇게 바꿔라"처럼 과제 자체에 관한 정보를 주면, 그 정보는 다음 시도의 합성과 인출에 곧장 쓰여 학습을 돕는다. 자원이 과제 처리로 흐른다. 반면 "잘했다", "이것밖에 못 하나" 같은 자아에 관한 평가를 주면, 학습자의 자원이 자기를 방어하고 추스르는 데로 쏠려 정작 과제를 처리할 몫이 준다. 같은 피드백이라는 이름 아래, 한쪽은 자원을 과제로 보내고 다른 쪽은 자아로 보낸다. 피드백을 모은 큰 분석들이 적지 않은 피드백이 오히려 수행을 떨어뜨린다고 보고하는 까닭이, 이 향방의 차이에 있는 것으로 읽힌다.

모든 지원은 상태에 상대적이다

네 지렛대를 가로지르는 한 가지가 있다. 어떤 지원도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쁘지 않고, 학습자의 현재 표상 상태에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펼친 풀이는 초보에게 발판이고 전문가에게 군더더기였다. 섞어 풀기는 변별이 목표일 때 이롭고 단일 절차 숙달이 목표일 때 외려 방해였다. 자원이 어디서 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가 학습자가 이미 무엇을 한 단위로 갖췄느냐에 따라 달라지므로, 같은 조작이 누구에게는 자원을 합성으로 모아 주고 누구에게는 자원을 헛되이 흩는다. 그러니 "이 방법이 좋다"는 말은 늘 "누구의 어떤 상태에서"라는 단서를 달고서만 참이다.

작업공간의 좁음과 자원 경쟁, 그리고 그 자원을 트는 지렛대들까지 보았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작업공간이 무엇을 못 하게 가로막는지를 주로 보았다. 정작 작업공간이 자원을 모아 해내는 일, 곧 여러 표상을 묶어 새것을 짓고 글에서 의미를 세우는 일, 그 산물 자체는 아직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한계를 보았으니, 이제 작업공간이 실제로 무엇을 만들어 내는지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