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 하나의 자원을 셋이 나눈다

작업공간의 좁음이 한 번에 몇 개를 들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면, 그것과는 별개의 한계가 하나 더 있다. 든 것들 위에서 한꺼번에 얼마나 많은 연산을 굴릴 수 있느냐다. 다섯 개를 들고 가만히 있는 것과, 그 다섯 개를 서로 묶으며 동시에 새것을 불러오는 것은 작업공간에 거는 부담이 다르다. 둘째 한계는 이 연산량이다. 그리고 이 한계의 핵심은, 작업공간의 세 연산이 저마다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살림을 나눠 쓴다는 데 있다.

셋이 나눠 쓰는 하나의 살림

형성도, 유지도, 인출도 모두 같은 한정된 자원에서 빠져나간다. 그 자원이 무엇인지는 기억 연구가 오래 다뤄 왔는데, 작업공간의 칸칸이 늘어선 저장 자리라기보다 그 칸들을 부리는 주의, 곧 무엇에 집중을 쏟을지를 배분하는 통제력에 가깝다. 작업공간의 저장에는 말과 이미지처럼 종류에 따라 갈리는 결이 분명히 있지만, 세 연산이 한꺼번에 다투는 것은 그 저장 칸이 아니라 그것들을 부리는 주의 하나다. 한 표상을 붙들어 두는 일도, 새 합성 표상을 묶는 일도, 장기기억에서 무언가를 끌어오는 일도 전부 이 주의를 끌어다 쓴다.

자원이 하나이고 그것을 셋이 나눠 쓴다는 사실에서 곧장 한 가지가 따라 나온다. 한 연산이 자원을 많이 가져가면 그만큼 나머지의 몫이 줄어, 한쪽이 좋아지는 만큼 다른 쪽이 나빠진다. 이 맞바꿈은 작업공간 바깥의 익숙한 장면에서 먼저 또렷이 보인다. 익숙한 길을 달리며 나누는 가벼운 잡담은 둘 다 무리 없이 굴러간다. 그런데 길이 갑자기 얽히거나 대화가 골치 아픈 흥정으로 바뀌는 순간, 한쪽이 다른 쪽을 먹는다. 까다로운 길에 주의를 몰면 말문이 막히고, 흥정에 골몰하면 갈림길을 놓친다. 주의를 한쪽으로 기울이면 그쪽이 살아나고 반대쪽이 죽는 이 맞바꿈이, 둘이 하나의 자원을 나눠 쓰고 있다는 표시다. 머릿속에 든 것은 길과 대화 둘뿐이라 자리는 넉넉한데도, 그 둘을 동시에 힘껏 굴릴 수가 없다. 7장의 좁음이 한 번에 몇 개를 드느냐의 한계였다면, 여기서 드러나는 둘째 한계는 그 위에서 얼마나 굴리느냐다.

작업공간 안에서도 똑같은 맞바꿈이 세 연산 사이에 벌어진다. 한 번의 묶기가 복잡해져 추론이 길어지면 그동안 붙들고 있던 재료가 흐려지고, 장기기억에서 자꾸 끌어와야 하면 그 인출이 묶기에 쓸 몫을 가져간다. 형성과 유지와 인출이 한 자원을 매 순간 갈라 쓰는 처지라, 한쪽이 무거워지면 다른 쪽이 무너진다.

인출은 공짜가 아니다

세 연산이 한 자원을 다툰다는 말이 가장 의심받기 쉬운 대목은 인출이다. 무언가를 떠올리는 일은 그저 장기기억에서 꺼내 오는 것이니, 작업공간의 자원을 따로 쓰지 않는 공짜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이는 실험이 있다. 무언가를 인출하는 동안 동시에 다른 과제를 시켜 주의를 나누게 하면, 떠올린 내용의 정확도 자체는 거의 떨어지지 않는데도 그 곁다리 과제의 수행이 뚜렷이 나빠진다. 인출이 주의를 안 썼다면 곁다리 과제가 멀쩡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떠올리는 일이 주의라는 자원을 끌어다 쓰고 있다는 직접 증거다. 인출은 장기기억에서 거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연산과 같은 살림에서 자기 몫을 떼어 가는 연산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글을 읽다가 묶을 상대가 작업공간에서 밀려나 장기기억에서 따로 인출해 와야 할 때, 그 인출이 마침 묶기에 쓰여야 할 자원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앞 문장과 뒤 문장이 같은 대상을 가리키면, 그 대상이 아직 작업 공간에 남아 있어 묶기가 값싸게 끝나지만, 둘 사이에 공유하는 단서가 없으면 그 대상을 장기기억에서 따로 끌어와야 하고, 그 끌어오기가 자원을 먹는다. 이을 관계 자체가 글에 없어 추론으로 만들어 내야 하면 자원이 더 든다. 글의 어려움이 단어의 길이나 문장의 길이로 정해지지 않고 이런 고비용 연산이 얼마나 자주 강요되느냐로 정해지는 까닭이 여기 있다.

깊이 실패, 다시 보기

앞 장에서 본 깊이 실패, 곧 글자는 다 읽었는데 이해가 안 서는 상태도 이 자원 경쟁으로 다시 읽을 수 있다. '먼저 지은 것이 밀려난다'고 했는데, 자원의 눈으로 보면 인출과 형성이 자원을 많이 가져가 붙들기에 돌아갈 몫이 모자란 일이다. 붙들 자원이 없으니 맥락이 최상위 묶기에 다다르기도 전에 흐려진다. 좁음과 경쟁은 한 실패의 두 얼굴이다.

자원을 어디로 흘릴 것인가

여기서 학습 설계의 방향이 잡힌다. 한정된 자원이 학습을 실제로 만드는 연산에 닿게 하는 것이다. 세 연산은 학습에 대해 저마다 자리가 다르다. 형성은 새 합성 표상을 지어 장기기억에 없던 구조를 남기고, 인출 가운데 인출강도가 떨어진 자리에서 힘들여 떠올리는 쪽은 앞서 본 대로 저장강도를 가장 크게 키운다. 이 둘이 학습을 만든다. 유지는 다르다. 재료가 묶일 때까지 붙들어 둘 뿐, 같은 것을 작업공간에 띄워만 두어서는 그 자체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인출에도 학습을 남기지 않는 쪽이 있다. 읽다가 묶을 거리가 밀려나 어쩔 수 없이 다시 끌어오는 곁다리 인출은 형성에 쓸 자원을 빼앗는 간접비일 뿐이다. 그래서 좋은 학습 조건이란 자원이 형성과 힘든 인출로 흐르게 하고, 학습에 보탬 없이 새는 몫을 걷어 내는 것이다. 새는 몫이란 같은 것을 거듭 띄우는 불필요한 유지와, 엉성한 글이 자꾸 강요하는 곁다리 인출이다.

실제 학습법들은 바로 이 분배를 특정 방향으로 트는 지렛대들이다. 어떤 것은 곁다리 인출과 탐색의 부담을 덜어 자원을 형성으로 몰아주고, 어떤 것은 거꾸로 자원을 일부러 변별 같은 데 더 써서 거기서 남는 것을 바꾼다. 자원이라는 한 살림을 어느 연산으로 흘려보내느냐, 그 손잡이를 어떻게 트느냐에 따라 흔한 학습 기법들이 갈린다. 다음 장에서 그 지렛대들을 하나씩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