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 인출은 경쟁이다

앞서 망각은 인출강도가 떨어지는 일이고, 그 저하의 큰 몫은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이에 쌓이는 간섭에서 온다고 했다. 간섭이란 결국 경쟁이다. 목표로 가야 할 활성을 다른 표상이 나눠 갖거나 가로채, 목표가 또렷이 떠오르지 못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경쟁은 구조가 다른 두 길에서 온다. 경쟁자가 목표와 같은 단서를 나눠 쓰거나, 아니면 다른 단서들에서 함께 깨어나거나. 둘을 차례로 본다.

한 단서를 여럿이 나눠 쓴다

한 길은 색인의 구조에서 곧장 나온다. 한 표상이 여러 합성 표상의 구성원이면, 그것이 켜질 때 활성이 그 여러 합성 표상으로 갈라져 흐른다. 한 줄기였다면 목표 하나로 곧장 갔을 활성이, 여러 갈래로 나뉘면 그만큼 묽어진다. 목표 표상이 이 갈라짐에서 밀리면 인출이 느려지거나, 같은 단서에 걸린 엉뚱한 표상이 대신 떠오른다. 한 단서에 걸린 표상이 많을수록 그것으로 특정 하나를 또렷이 부르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출강도의 저하가 왜 간섭의 문제인지가 보인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같은 단서에 걸리는 새 합성 표상들을 계속 쌓는다. 그 새 경쟁자들이 늘수록 옛 목표에 가던 활성이 더 잘게 갈라져, 닿기 어려워진다. 시간이 그냥 흘러 기억이 바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같은 단서에 경쟁이 쌓여 목표를 가리는 것이다.

여러 단서가 한꺼번에 깨어난다

다른 한 길은 사정이 다르다. 목표가 기댄 단서가 깨끗해도, 곧 거기 매달린 경쟁자가 따로 없어도, 간섭은 올 수 있다. 인출은 한 단서만 켜고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상황은 여러 단서를 한꺼번에 깨운다. 그 단서들이 저마다 제게 걸린 표상을 끌어 올리면, 작업공간에는 목표만이 아니라 옆 단서들이 부른 표상까지 함께 들어차려 한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 작업공간은 좁다. 한꺼번에 깨어난 그 표상들이 좁은 자리를 두고 다투고, 그중 강하게 켜진 것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면 목표는 밀려 떠오르지 못한다. 옆에서 함께 깨어난 무리에 묻히는 것이다. 막연한 단서로 무언가를 떠올리려 할 때가 그렇다. '거기서 만난 사람 이름'을 더듬으면 그때의 장소와 일과 얼굴이 한꺼번에 떠올라 도리어 이름 하나를 못 집는데, 단서를 좁혀 '그 사람 직업이 뭐였더라'로 물으면 깨어나는 무리가 줄어 비로소 이름이 떠오른다.

경쟁을 줄이는 길

두 길이 다르니 줄이는 처방도 둘이다. 그러나 뿌리는 하나로 만난다. 목표에 닿는 길에서 경쟁자를 덜어 내는 것이다.

한 단서에 경쟁자가 몰리는 데는 단서를 독특하게 만드는 것이 듣는다. 한 표상을 흔하디흔한 표면 노드에 걸어 두면 그 단서에 몰리는 경쟁자가 많지만, 그 표상에 거의 매인 독특한 단서에 걸어 인코딩하면 한 단서에 몰리는 경쟁자가 준다. 활성이 갈라질 일이 적어 목표 하나로 또렷이 모인다. 비슷해 보이는 것들을 일부러 가려내게 하는 것도 같은 일을 한다. 앞서 여러 유형을 섞어 푸는 일이 변별이라는 추가 합성을 얹어 자원을 더 쓴다고 했는데, 그 섞어 풀기에는 둘째 얼굴이 있다. 매번 "이건 무슨 유형인가"를 가리게 하면, 비슷해 보이던 표상마다 서로 다른 인출 경로가 갈린다. 한 유형만 몰아서 풀면 그것들이 한 표면에 뭉뚱그려져 나중에 서로 헷갈리지만, 섞어서 변별을 강제하면 저마다 다른 단서에 걸려 또렷이 구별된다.

여러 단서가 한꺼번에 깨어나는 데는 단서를 좁히는 것이 듣는다. 막연하고 넓은 추론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단서를 깨우니, 목표에 거의 매인 좁고 구체적인 단서로 물어 깨어나는 무리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비슷한 개념이 한데 떠올라 엉킬 때, 막연히 '그 단원 내용'을 떠올리기보다 구체적인 한 물음으로 좁혀 들어가면 덜 헷갈리는 까닭이 여기 있다.

잘못 든 것은 어떻게 고치나

지금까지는 옳게 든 표상이 경쟁에 밀리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같은 경쟁이 더 고약하게 작동하는 자리가 있다. 애초에 잘못 저장된 표상이 그 단서를 차지하고 있을 때다. 무언가를 새로 익히는 일은 더하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잘못 든 것을 고치는 일은 이미 자리 잡은 옛것을 밀어내야 하는데, 그 옛것이 좀처럼 비켜 주지 않는다.

까닭은 앞서 세운 공리에 있다. 저장강도는 한번 쌓이면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니 잘못 저장된 표상이라도 그 저장강도는 사라지지 않고, 옛 표상은 지워지지 않은 채 장기기억에 그대로 남는다. 옳은 정보로 덮어쓰려 해도 옛것이 지워지지 않으니, 교정은 옛것을 지우는 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교정은 무엇인가. 옳은 표상을 새로 세우고, 그것의 인출강도를 거듭 높여, 같은 단서가 주어졌을 때 옛 표상이 아니라 새 표상이 인출 경쟁에서 이기게 만드는 일이다. 옛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 더 자주 이기는 새것을 세워 점차 옛것을 눌러 두는 일이다.

오개념이 그토록 끈질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옛 오개념의 저장강도는 그대로 남아 있어서, 관련 단서가 주어질 때마다 같은 단서에 걸린 새 표상과 다시 인출 경쟁을 벌인다. 그래서 정확한 설명을 한 번 들었다고 해서 직관이 곧장 교체되지 않는다. 한동안은 정확한 정보와 옛 직관이 뒤섞인 어정쩡한 중간 상태가 산출된다. 옳은 것을 분명히 배웠는데도 무심결엔 옛 직관이 튀어나오는 일, 그것이 교정이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새 표상이 경쟁에서 거듭 이겨야 비로소 완성되는 더딘 일임을 보여 준다.

여기까지, 장기기억에 든 것을 찾아 쓰고, 경쟁에 묻히지 않게 하고, 잘못 든 것을 바로잡는 길을 보았다. 그런데 정작 학습자는 자기 장기기억이 그렇게 바뀌었는지를 직접 들여다보지 못한다. 고쳤는지 단단해졌는지는 느껴지지 않고, 읽는 순간의 수월함만 손에 잡힐 뿐이다. 자기 학습 상태를 읽지 못하는 이 눈먼 자리가, 다음 부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