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 이해를 가르는 네 갈래

상황모델은 빈틈을 메우는 추론적 합성으로 지어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같은 글을 읽고도 누구는 그 합성을 해내고 누구는 텍스트베이스에 머무는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어떤 명제가 장기기억에 남아 다음 합성의 재료가 되는지, 그리고 빈틈을 메우는 추론이 일어나는지 막히는지를 좌우하는 갈래가 넷 있다. 넷은 따로 노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한 물음으로 모인다. 글을 읽는 동안 추론적 합성이 일어나는가, 아니면 빠지는가.

무엇이 남는가 · 재진입과 표면의 우위

어떤 명제가 장기기억에 남는가. 작업공간은 좁아서 읽는 동안 모든 명제를 붙들고 있을 수 없고, 처리한 명제는 곧 밀려난다. 그런데 밀려난 명제도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뒤이어 들어온 문장이 그 명제의 구성원을 다시 가리키면, 그 명제가 작업공간으로 다시 불려 올라온다. 구성원이 곧 단서라는 원리가 여기서도 작동한다. 한 명제가 여러 후속 문장과 구성원을 거듭 공유하면 거듭 불려 올라오고, 불려 올라올 때마다 한 번 더 처리되어 장기기억에 남을 확률이 쌓인다.

글의 중심 주장이 세부 사항보다 훨씬 잘 기억되는 것은 이 재호출의 누적 때문이다. 중심 주장은 글 곳곳의 후속 문장들과 구성원을 거듭 나누므로 자꾸 불려 올라와 처리 횟수가 쌓이고, 한쪽 구석의 세부는 한 번 처리되고는 다시 불려 올 일이 없어 흘러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남느냐가 '이것이 중요하다'는 선언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본문에 "이 점이 핵심"이라고 적어 두어도, 그 표상이 후속 문장들과 구성원을 나누지 않으면 다시 불려 올라오지 않아 그대로 흘러간다. 거꾸로 중요하다고 표시하지 않아도 여러 문장과 얽힌 표상은 거듭 불려와 남는다. 무엇이 기억에 남을지를 정하는 것은 중요성의 선언이 아니라 글의 짜임 속에서 얼마나 자주 다시 불려 오느냐다.

빈틈이 합성을 부른다 · 응집성의 역설

다음은 빈틈을 메우는 추론이 일어나느냐다. 직관적으로는 연결을 빠짐없이 명시한 매끄러운 글이 언제나 좋아 보인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글에 명시되지 않은 연결, 곧 빈틈이 있으면 독자는 장기기억의 배경지식을 끌어와 그 자리를 추론으로 메우는데, 바로 그 추론이 상황모델을 짓는 합성이다. 연결을 모두 떠먹여 주는 고응집 텍스트는 이 메우는 일을 없애 버린다. 메울 빈틈이 없으니 독자는 추론할 일 없이 텍스트베이스를 매끄럽게 통과하고, 상황모델을 지을 합성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배경지식이 충분한 독자에게는 빈틈 있는 저응집 텍스트가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낸다. 그리고, 상황모델을 재는 추론·적용 시험에서만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 효과는 독자에 매여 있다. 빈틈을 메울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에게 저응집 텍스트는 메울 재료가 없는 빈 구멍일 뿐이라, 이런 독자에게는 연결을 다 명시한 고응집이 낫다. 그러니 "연결을 다 채운 글이 좋다"도, "빈틈을 남긴 글이 좋다"도 그 자체로는 참이 아니다. 독자가 그 빈틈을 메울 재료를 가졌느냐가 답을 가른다.

스스로 묻게 하기 · 자기 설명

빈틈을 메우는 추론을 독자 스스로 강제하는 방법도 있다. 읽으며 "왜 그런가", "이것이 앞의 것과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스스로 묻는 일이다. 이 물음은 장기기억의 인과 지식을 끌어와 글의 명제와 잇게 만든다. 곧 추론적 합성을 제 손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같은 글을 그냥 따라 읽은 사람보다 줄줄이 "왜"를 물으며 읽은 사람이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은, 그 물음이 상황모델을 짓는 합성을 더 많이 일으켰기 때문이고, 실제로 설명을 많이 만들어 낸 만큼 이해도 깊어진다.

그러나 이 방법에도 같은 단서가 붙는다. "왜"를 물어도 그 답을 지을 재료가 장기기억에 없으면, 물음은 빈 처리로 끝난다. 끌어올 인과 지식이 있어야 그것을 글에 잇는 합성이 일어나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왜"를 백 번 물어도 메울 것이 없다. 자기 설명이 듣는 것은 인출할 재료가 있을 때다.

인출이 실패하면, 탄 길이 없으니 다진 것도 없다. 너무 쉬우면 인출강도가 높아 길을 밟아도 거의 못 다지고, 너무 어려워 실패하면 아예 길을 밟지 못해 역시 못 다진다. 강화는 떨어진 인출강도를 그래도 힘껏 끌어올려 성공시킨 그 통과에서만 나온다. 그래서 인출 연습도 성공이 전제다. 한 분석에서, 떠올리기 성공률이 절반 아래로 떨어지는데 정답도 알려 주지 않으면 시험 효과가 사실상 사라졌다. 그런데 떠올린 직후에 정답을 확인해 주면, 곧 피드백을 짝지으면, 성공률이 낮아도 효과가 크게 되살아났다. 길을 더듬다 끝내 못 찾은 직후에 올바른 길을 확인하면, 그 더듬은 노력이 헛되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학습이 된 것이다.

그러니 어려움을 바람직하게 만드는 조건은 분명하다. 학습자가 필요하면 도움을 받아서라도 끝내 성공시킬 수 있는 난이도여야 한다. 떠올리게 했으면 그 직후 답을 확인해 주거나, 대체로 성공할 만한 수준으로 물어야 한다. 떠올리게만 하고 답도 안 주고 난도도 가늠하지 않으면, 좋자고 한 일이 헛수고가 된다.

글이 합성을 안내하는가 · 연결어와 형식

마지막 갈래는 글이 추론적 합성의 방향을 얼마나 일러 주느냐다. 명제 사이의 실제 관계를 지정하는 연결어, 곧 대조의 "그러나"나 인과의 "때문에"는 어느 관계로 두 명제를 묶어야 할지를 일러 주어 합성을 돕는다. 반면 관계를 지정하지 않고 처리할 거리만 더하는 부가 연결어, 곧 "그리고"나 "또한"은 많아질수록 오히려 이해를 떨어뜨린다. 아무 관계도 지정하지 않으면서 묶어야 할 명제만 늘리니, 작업공간의 자원만 먹고 합성은 안내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으로 줄줄이 이어진 글이 연결된 것처럼 보이면서도 머리에 안 남는 까닭이 이것이다. 그것은 연결의 모양을 한 나열이다.

글의 형식도 같은 이치로 작동한다. 사건이 인과의 사슬로 조밀하게 이어지는 서사는, 같은 내용을 분류하고 나열하기만 하는 설명문보다 상황모델로 합성하기가 쉽다. 서사에는 '그래서', '그 때문에'의 관계가 촘촘히 깔려 있어 독자의 합성을 매 걸음 안내하지만, 나열식 설명문은 항목 사이에 묶을 관계를 주지 않아 독자가 일일이 관계를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물음으로 모이는 네 갈래

네 갈래는 결국 하나로 모인다. 상황모델은 독자가 빈틈을 메우는 추론적 합성에서 지어지고, 그 합성이 일어나느냐가 이해의 깊이를 가른다. 글이 모든 것을 떠먹이거나 관계 없는 나열로 채우면 합성이 빠져 텍스트베이스만 남고, 글이 메울 자리를 남기고 독자가 메울 재료를 가졌을 때 합성이 일어나 상황모델이 선다. 무엇이 남느냐는 그 합성의 재료가 글의 짜임 속에서 얼마나 자주 다시 불려 오느냐가 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