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는 글 · 하나의 모델에서 흘러나온 모든 것
여는 글에서 우리는 한 수수께끼와 한 불만으로 시작했다. 매끄럽게 읽힌 글이 정작 남지 않는다는 수수께끼, 그리고 학습법이 늘 흩어진 팁의 목록으로 온다는 불만. 팁을 외우는 대신 그것들을 낳는 모델 하나를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그 약속을 거슬러 올라가, 그 많은 것이 정말 하나에서 흘러나왔는지를 한 줄로 꿰어 본다.
한 줄로 꿴 모델
머릿속에 성격이 정반대인 두 저장소를 두었다. 좁고 휘발하는 작업공간과 넓고 오래가는 장기기억. 둘 사이에 세 과정을 놓았다. 작업공간이 지은 것을 장기기억에 쓰고, 그것을 굳히고, 다시 읽는다. 장기기억에 쌓이는 것은 표상들의 연결망이고, 그 표상마다 두 힘이 걸렸다. 지금 닿는 정도인 인출강도와, 얼마나 오래가고 빨리 되살아나는지를 정하는 저장강도.
여기서부터는 따름정리였다. 두 힘이 엇갈려 맞물린다는 것 하나, 곧 저장강도는 인출강도가 떨어진 자리의 힘든 인출에서만 크게 자란다는 것에서 시험 효과와 분산과 바람직한 어려움이 흘러나왔다. 작업공간이 좁다는 것 하나에서 깊이 실패와 전문성이, 같은 자원을 셋이 나눠 쓴다는 것에서 인지 부하와 그것을 트는 지렛대들이 나왔다. 인출이 표면 단서로만 장기기억을 더듬는다는 것에서 전이의 실패와 스키마와 간섭과 오개념이 나왔다. 그리고 학습자가 저장강도를 직접 못 읽고 작업공간의 수월함만 느낀다는 것에서, 자기 학습을 거꾸로 판단하는 거짓 계기판이 나왔다.
표면을 의심하는 법
이 모델이 거듭 가리킨 한 가지가 있다. 표면은 깊이의 지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읽는 동안의 매끄러움은 글이 머리에 남긴 것을 재지 못하고, 연습에 들인 시간의 양은 그 시간에 무슨 처리가 일어났는지를 보지 못하며, 술술 떠오르는 유창함은 저장강도가 아니라 그 순간의 인출강도를 비출 뿐이다. 우리가 학습의 척도로 손쉽게 집어 드는 것들, 곧 매끄러움이나 시간이나 수월함이 하필 모두 표면이고, 정작 학습으로 남는 것은 그 표면이 가리지 못하는 곳에서 자란다.
그래서 깊이를 읽으려면 표면을 의심하고 다른 자를 들어야 한다. 매끄럽게 읽힌다고 남은 것이 아니고, 오래 붙들고 있었다고 익은 것이 아니다. 무엇이 실제로 남았는지는 자료를 덮고 스스로 꺼내 보는 인출 시험으로만 드러난다. 느낌 대신 시험을 믿는 것이 자기 학습을 다스리는 일의 핵심이다.
자리를 열되, 닫을 수 있는 만큼만
이 모델은 글을 쓰고 가르치는 일에도 한 방향을 일러 준다. 이해와 학습은 글이나 말에 담겨 그대로 건네지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 안에서 조립된다. 상황모델은 독자가 빈틈을 메우는 추론에서 서고, 저장강도는 학습자가 힘든 인출을 견뎌 낼 때 자란다. 둘 다 받는 쪽이 스스로 해야 비로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니 잘 가르치는 일은 모든 것을 떠먹이는 일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스스로 조립할 자리를 남기는 일에 가깝다.
다만 이 처방에는 무거운 단서가 따른다. 자리를 열되, 학습자가 닫을 수 있는 만큼만 열어야 한다. 빈틈은 그것을 메울 배경지식을 가진 독자에게만 상황모델을 키우고, 메울 재료가 없는 독자에게는 그저 빈 구멍이다. 힘든 인출은 학습자가 끝내 성공시킬 수 있을 때만 저장강도를 키우고, 그 경계를 넘으면 강화할 경로를 못 만들 뿐 아니라 유능감마저 깎아 관여를 끊는다. 그러니 좋은 빈틈, 좋은 어려움은 학습자의 현재 상태에 정확히 맞춰진 것이다. 너무 많이 떠먹이면 조립할 일이 없어 남지 않고, 감당 못 할 만큼 비워 두면 조립하지 못해 무너진다. 그 사이의 좁은 띠, 곧 학습자가 스스로 메우고 떠올리고 닫을 수 있는 꼭 그만큼을 여는 것이 이 모델이 가리키는 자리다.
모델을 쥐고 나면
이제 어떤 학습법을 새로 만나거든, 그것을 외울 항목으로 받지 말고 이렇게 물어보면 된다. 이것은 두 힘 중 무엇을 어느 방향으로 미는가. 인출강도만 잠깐 올리는가, 아니면 저장강도를 키우는가. 자원을 합성으로 모으는가, 헛되이 흩는가. 표면 단서에 묶는가, 구조로 떼어 내는가.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다면, 그 학습법이 언제 듣고 언제 듣지 않는지가 모델에서 따라 나온다.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고 학습하는가. 그리고 당신은 지금, 사람의 이해와 학습에 대한 상황모델을 가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