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좁은 작업공간과 넓은 장기기억

처음 듣는 전화번호를 받아 적을 펜이 없을 때를 떠올려 보자. 번호를 입속으로 굴리며 휴대폰을 꺼내는 그 몇 초 사이, 누가 말을 걸면 번호는 그대로 흩어진다. 다시 물어야 한다. 그런데 어릴 적 외우고 다니던 집 전화번호는 몇 년이 지나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당장 또렷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그 번호는 어딘가 남아 있다. 한쪽 번호는 몇 초를 못 버티고, 다른 쪽 번호는 몇 년을 버틴다. 같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둘의 운명이 이렇게 다른 것은, 그 둘이 머무는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머릿속을 두 개의 저장소로 나눠 보는 데서 이 책은 시작한다. 하나는 지금 이 순간 처리 중인 것이 잠깐 머무는 자리이고, 다른 하나는 한번 자리 잡은 것이 오래 쌓이는 자리다. 갓 받은 전화번호는 앞쪽에 잠깐 떠 있다 휘발하고, 옛 번호는 뒤쪽에 박혀 오래 남는다. 두 자리는 크기도, 속도도, 무엇을 얼마나 오래 붙드는지도 정반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좁고 휘발하는 작업공간

지금 처리 중인 것이 머무는 앞쪽 자리를 작업공간(working memory)이라 부른다. 머릿속에서 실제 작업이 벌어지는 작업대에 빗댈 만한 자리다. 무언가를 계산하고, 견주고, 잇는 일은 전부 이 위에서 일어난다. 작업공간의 한계는 두 갈래다. 한 번에 무엇을 얼마나 담을 수 있느냐가 한 갈래고, 담은 것 위에서 한 번에 얼마나 처리할 수 있느냐가 다른 갈래다. 담는 쪽부터 보면, 작업공간은 좁고 또 휘발한다.

우선 좁다. 한 번에 올려 둘 수 있는 것이 많아야 한 줌이다. 17 곱하기 24를 암산으로 해 보면 곧장 느낄 수 있다. 17에 4를 곱해 68을 얻고, 17에 20을 곱해 340을 얻은 다음 둘을 더해야 하는데, 먼저 얻은 68을 붙든 채 340을 구하는 사이 68이 흐려지고, 그러면 마지막 덧셈에서 막힌다. 종이 위에서는 시시한 계산이 머릿속에서 버거운 것은, 중간 결과 몇 개를 동시에 들고 있어야 하는데 그 몇 개가 작업공간의 한계에 곧장 부딪치기 때문이다. 정확히 몇 개까지인지는 무엇을 드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 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다는 것은 분명하다.

거기에 휘발하기까지 한다. 작업공간에 올린 것은 능동적으로 붙들지 않으면 몇 초 만에 사라진다. 앞의 전화번호가 말 한마디에 흩어진 것이 이것이다. 입속으로 번호를 굴리는 동안에는 남아 있다가, 굴리기를 멈추고 다른 데로 주의가 가는 순간 비어 버린다. 작업공간에 든 것은 가만두면 유지되는 게 아니라, 계속 붙들어야만 유지된다. 붙들기를 멈추면 사라진다.

담는 쪽의 이 두 모습이 합쳐지면, 작업공간은 좁은 데다 새기까지 하는 자리가 된다. 들 수 있는 양도 적고, 든 것도 자꾸 빠져나간다.

처리하는 쪽의 한계는 다른 결이다. 작업공간은 무엇을 얼마나 담느냐뿐 아니라, 담은 것 위에서 한 번에 얼마나 굴릴 수 있느냐에도 천장이 있다. 담는 한계와 처리하는 한계는 별개다.

이 한계들에서 머리로 하는 거의 모든 일의 병목이 생긴다. 그런데도 머릿속 연산은 오직 이 좁은 작업공간에서만 일어난다. 이해하고 추론하고 새것을 짓는 일은 다른 어디도 아닌 이 위에서만 벌어진다.

넓고 오래가는 장기기억

뒤쪽 자리는 장기기억(long-term memory)이다. 인코딩된 것을 쌓아 두는 서고에 빗댈 만한 자리로, 작업공간과는 모든 면에서 반대다.

먼저 넓다. 우리는 수천 개의 얼굴을 알아보고, 수만 개의 단어를 알며, 멜로디 두 음만 듣고도 무슨 곡인지 안다. 이 모든 것이 장기기억에 들어 있는데, 새 기억을 쌓느라 옛 기억을 지워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작업공간이 한 줌으로 꽉 차는 것과 달리, 장기기억은 차서 넘치는 법이 없다. 용량의 한계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된다.

다음으로 오래간다. 어릴 적 전화번호가 몇 년이 지나도 남아 있는 것처럼, 한번 제대로 자리 잡은 것은 오래간다. 작업공간에 든 것이 몇 초를 못 버티는 데 비하면 시간 단위 자체가 다르다.

다만 한 가지가 작업공간과 닮았다. 장기기억에 들어 있다고 해서 언제나 곧장 꺼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분명히 아는 사람 이름이 혀끝에서 맴돌기만 하고 떠오르지 않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이름은 장기기억에서 사라진 게 아니다. 잠시 뒤에, 혹은 작은 단서 하나에 불쑥 떠오르니까. 들어 있기는 한데 닿는 길이 잘 안 열리는 상태다. 장기기억에 든 것에 지금 이 순간 얼마나 잘 닿느냐는 시간이 흐르고 비슷한 것들이 끼어들면서 흐려진다. 무엇이 장기기억에 남아 있느냐와, 그것에 지금 닿을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두 자리가 다루는 같은 단위

성격이 이토록 다른 두 저장소지만, 둘이 주고받는 물건은 같은 종류다. 그 물건을 표상(representation)이라 부른다. 표상이란 머릿속에서 다뤄지는 정보의 한 덩어리, 한 단위다. 작업공간에 올라오는 것도, 장기기억에 쌓이는 것도, 둘 사이를 오가는 것도 모두 표상이다.

한 단위라고 해서 담는 정보의 양이 일정한 것은 아니다. 'ㄱ, ㅏ, ㅁ' 같은 낱글자 하나도 한 표상이고, '감'이라는 단어 하나도 한 표상이며, '늦가을 시골집 마당의 감나무'라는 한 장면도 한 표상이 될 수 있다. 셋이 담는 정보의 양은 천양지차인데, 작업공간에서는 똑같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 낯선 글자들의 나열을 외우기는 버거워도 익숙한 단어 하나는 수월하게 드는 것이 이 때문이다. 같은 한 자리에 얼마나 많은 정보를 압축해 싣느냐가 사람마다, 숙련도마다 다르다. 이 압축이 어떻게 일어나고 왜 전문가가 초보와 같은 작업공간으로 더 많은 것을 다루는지는 뒤에서 파고든다.

연산과 저장의 분업

두 저장소의 관계는 분업으로 정리된다. 연산은 작업공간에서 일어나고, 그 결과는 장기기억에 남는다. 17 곱하기 24를 푸는 동안 곱하고 더하는 작업은 작업공간에서 벌어지지만, 그렇게 얻은 408이라는 답이나 풀이의 방법이 오래 남는다면 그것은 장기기억에 기록된 것이다.

그러니 이 둘 사이에서 무엇이 오가느냐가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의 골격이 된다. 작업공간에서 지은 것이 장기기억으로 넘어가 기록되고(쓰기), 장기기억에 든 것이 작업공간으로 불려 나온다(읽기).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결국 작업공간에서 벌어진 연산이 장기기억의 상태를 바꿔 놓는 일이다. 갓 받은 전화번호가 흩어지지 않고 어릴 적 번호처럼 장기기억에 자리 잡으려면, 작업공간과 장기기억 사이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