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 표면으로만 찾는다

여기까지 우리는 작업공간이 입력을 아는 것과 묶어 표상을 짓고, 그것을 장기기억에 새기는 일을 따라왔다. 그러나 새겨졌다고 다 쓰이는 것은 아니다. 정작 필요한 자리에서 찾아 꺼낼 수 있어야 비로소 쓰인다. 그리고 바로 그 꺼내기가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배움에서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것은, 한자리에서 익힌 것을 원리가 유사한 전혀 다른 자리에서 꺼내 쓰는 일이다. 수학 시간에 익힌 원리를 처음 보는 문제에, 한 사례에서 깨친 이치를 낯선 사례에 적용하는 것. 그런데 인지과학이 가장 일관되게 보고하는 냉정한 사실 하나가, 바로 이 옮겨 쓰기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가장 원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가. 그 답이 인출이 장기기억을 찾아가는 방식에 있다.

떠올리지 못한 해법

고전적인 실험이 하나 있다. 사람들에게 먼저 이야기 한 편을 읽힌다. 한 장군이 요새를 치려는데, 대군을 한 길로 몰아넣으면 길에 묻힌 지뢰가 터진다. 그래서 군대를 잘게 나눠 여러 길로 보내고, 요새 앞 한 점에 동시에 모이게 해 함락한다. 그런 다음, 겉보기에 전혀 무관한 문제를 낸다. 몸속 깊은 곳의 종양을 없애야 하는데, 단번에 태울 만큼 센 광선은 지나는 길의 성한 살까지 태워 버린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해법은 요새 이야기와 똑같다. 약한 광선 여러 줄기를 사방에서 쏘아 종양 한 점에 모으면 된다. 줄기 하나하나는 성한 살이 다치지 않을 만큼 약하되, 모인 자리에서만 종양을 태울 만큼 세진다. '약한 힘을 여러 갈래로 나눠 한 점에 모은다.' 두 해법은 글자 그대로 같은 구조다. 방금 그 이야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곧장 떠올릴 법하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요새 이야기를 먼저 읽고도 종양 문제 앞에서 그 해법을 스스로 떠올린 사람은 열에 하나 남짓이었다. 대부분은 두 문제가 같은 구조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헤맸다. 결정적인 것은 그다음이다. "아까 읽은 이야기가 도움이 될지 보라"고 한마디 일러 주자, 그제야 대다수가 풀어냈다. 적용할 능력이 없던 것이 아니다. 능력은 있었는데, 그것을 스스로 불러내지 못했을 뿐이다.

색인은 표면으로 걸린다

이 갈림, 곧 떠올리기만 하면 풀 수 있는데 떠올리지 못하는 이 갈림이 인출의 본성을 드러낸다. 무언가를 떠올린다는 것은 지금 활성화된 노드에서, 그 노드를 구성원으로 가진 합성 표상으로 활성이 번지는 일이다. 그러니 인출은 지금 이 순간 켜진 단서와 그 표상이 걸려 있는 단서가 겹치는 만큼만 성공한다.

그렇다면 한 표상이 어떤 단서에 걸려 있는가는 무엇이 정하는가. 새길 때 정해진다. 한 합성 표상의 구성원이 곧 그것을 부르는 단서이니, 무엇과 엮어 새겼느냐가 곧 무엇으로 그것을 꺼낼 수 있느냐다. 그러니 새기는 일은 장기기억에 무언가를 넣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나중에 어느 단서로 꺼낼지까지 함께 정한다. 전이의 운명은 이미 새기는 순간에 반쯤 정해진다. 무엇과 엮였느냐가 어디서 다시 켜질지를 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익히는 동안 곁에 있어 함께 엮이는 것이 대개 그 상황의 표면 — 소재나 대상이나 맥락이라는 데 있다. 그리고 떠올리는 순간에 켜지는 단서 또한 그 자리에 실제로 나타난 표면이다.

요새 이야기를 읽고 저장한 표상은 군대, 길, 요새 같은 표면 노드에 걸려 있다. 그런데 종양 문제가 켜는 노드는 광선, 종양, 신체다. 두 무리 사이에 겹치는 표면 노드가 하나도 없으니, 종양 문제에서 출발한 활성이 요새 표상으로 번져 갈 길이 없다. 두 해법이 공유하는 '한 점에 모음'이라는 구조는 어떤가. 그것은 합성 표상이 구성원들을 묶은 관계의 형식일 뿐, 그 자체로 따로 떨어져 켜질 수 있는 노드가 아니다. 구조는 합성 표상의 모양이지, 상황이 손가락으로 짚어 켤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구조가 똑같아도 표면이 다르면 활성이 건너갈 다리가 없다. 표면은 단서가 되고, 구조는 단서가 되지 못한다.

"도움이 될지 보라"는 힌트가 왜 즉효였는지도 이로써 설명된다. 그 한마디가 '아까 그 이야기'를 직접 켜 줘서, 막혀 있던 길을 외부에서 대신 열어 준 것이다. 장벽이 적용 능력에 있었다면 힌트를 줘도 못 풀어야 한다. 힌트 한마디에 풀린다는 것은, 장벽이 능력이 아니라 그 능력에 닿는 색인에 있었음을 말한다.

가까운 전이와 먼 전이

이 색인의 특성에서 전이의 한계가 따라 나온다. 과거에 배운 것과 표면이 겹치는 상황에서는 해당 표상이 순순히 인출된다. 같은 유형의 수학 문제나 비슷한 소재의 사례가 그렇다. 표면이 닮았으니 단서가 겹치고, 활성이 건너간다. 이런 가까운 전이는 비교적 잘 일어난다. 그러나 표면은 다르고 구조만 같은 상황에서는, 정작 그 구조가 필요한데도 닿지 못한다. 먼 전이가 드문 까닭이다.

전문성이 한 분야에 묶여 좀처럼 다른 분야로 옮겨 가지 않는 것도 같은 색인의 한계다. 한 분야에 깊이 든 사람이 쌓은 구조는 그 분야의 표면에 걸려 저장돼 있다. 체스 고수의 정교한 진형 표상은 체스판의 말과 자리에 걸려 있어, 경영이나 의학처럼 그 표면이 없는 자리에서는 켤 단서가 없다. 그래서 한 분야의 깊은 전문가도 낯선 분야에서는 평범한 초보로 돌아온다. 깊이 쌓은 구조도 그것이 걸린 표면이 다시 나타나지 않으면 불려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생긴다. 우리가 정작 배우고 싶은 것은 표면이 아니라 구조, 곧 소재가 무엇이든 통하는 원리다. 그런데 그 구조가 단서가 되지 못해, 정작 필요한 새 상황에서 불려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구조를 단서가 되게 하는 길은 없는가.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