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 작업공간에서 일어나는 세 연산

머릿속 연산이 벌어지는 곳은 작업공간이라고 했다. 그 위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17 곱하기 24를 암산할 때, 작업공간은 가만히 무언가를 담아 두기만 하는 선반이 아니다. 숫자를 불러오고, 곱하고, 중간 결과를 붙들고, 다시 더한다. 작업공간이 표상들 위에서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로 추려진다. 표상을 불러오고, 표상들을 묶고, 표상을 붙들어 둔다.

불러오기

첫 연산은 장기기억에서 표상을 끌어와 작업공간에 올리는 일, 곧 인출이다. 인출은 앞에서 장기기억을 읽는 과정으로 만났는데, 작업공간의 처지에서 보면 그것은 작업공간이 재료를 조달하는 연산이기도 하다. 17에 4를 곱하려면 먼저 '4 곱하기 7은 28', '4 곱하기 1은 4' 같은 구구단 표상을 장기기억에서 불러와 작업공간에 올려야 한다. 글을 읽을 때도, 앞에 나왔던 인물이 여러 문장 뒤에서 다시 가리켜질 즈음이면 그 인물 표상은 작업공간에서 이미 밀려난 뒤다. 좁은 작업공간이 그새 다른 내용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인물을 장기기억에서 도로 끌어올려야 새 문장과 이을 수 있다. 작업공간의 작업은 거의 언제나 장기기억에서 조달한 재료를 필요로 하므로, 불러오기는 다른 연산의 바탕이 된다.

묶기

다음은 작업공간에 함께 오른 여러 표상을 한 단위로 묶어 새 합성 표상을 만드는 일이다. 이것을 형성이라 부른다. 3장에서 본 연결망의 언어로 말하면, 떠 있는 표상 몇 개를 한 관계로 엮어 새 합성 표상을 짓는 일이다. 이 묶는 일이 작업공간이 하는 가장 중요한 연산이다. 새 합성 표상이 장기기억에 남으면 그것이 곧 학습이기 때문이다.

표상을 묶는 관계는 두 갈래 길로 온다. 한 갈래는 반복이다. 같은 배치를 거듭 처리하다 보면, 늘 함께 나타나던 것들이 서서히 한 덩어리로 굳는다. 따로 떨어진 글자들이 수없이 함께 보이다 보면 한 단어로 묶여 한 단위가 되고, 같은 절차를 거듭 밟다 보면 그 단계들이 한 덩어리 기술로 묶인다. 통계적으로 자주 함께 오는 것이 한 단위가 되는 이 길로 전문성이 쌓인다. 다른 갈래는 추론이다. 배경지식에서 인과나 유추 같은 관계를 끌어와, 떨어져 있던 표상들을 한 번에 엮는다. 글을 읽으며 '그래서 이렇게 된 거구나' 하고 두 사건을 인과로 잇는 일, 새 개념을 아는 것에 빗대어 자리 잡게 하는 일이 이 길이다. 이해라 부르는 것이 여기서 일어난다. 두 갈래가 무엇을 조건으로 작동하는지는 따로 깊이 파헤친다.

붙들기

남은 하나는 표상을 작업공간에 능동적으로 붙들어 두는 일, 곧 유지다. 작업공간에 든 것은 손을 놓으면 몇 초 만에 흘러내리므로, 다음 연산에 쓸 재료를 잃지 않으려면 계속 붙들어야 한다. 17에 4를 곱해 얻은 68을, 17에 20을 곱하는 동안 흘리지 않으려 입속으로 되뇌는 일이 유지다.

유지에는 학습과 관련해 짚어 둘 중요한 성질이 하나 있다. 표상을 작업공간에 오래 붙들고 있거나 같은 것을 거듭 다시 보기만 해서는, 저장강도가 거의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 장에서 저장강도는 인출강도가 떨어진 뒤의 힘든 인출에서 크게 오른다고 했다. 그런데 유지나 단순 재노출은 표상을 인출강도가 높은 상태로 작업공간에 띄워 둘 뿐, 떨어진 것을 힘들여 끌어올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붙들고 있는 동안 그 순간의 수행은 멀쩡하지만, 장기기억에 오래 남기는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교재를 펼쳐 놓고 같은 쪽을 자꾸 다시 읽으면 읽는 동안엔 술술 넘어가지만 정작 시험장에서 비어 있는 까닭의 첫 조각이 이것이다. 다시 읽기는 인출강도를 잠깐 떠받칠 뿐 저장강도를 키우지 못한다.

세 연산이 학습으로 이어지는 길

세 연산을 늘어놓고 보면, 학습이 이 중 어디서 나오는지가 보인다. 묶기가 지은 새 합성 표상이 인코딩과 응고화를 거쳐 장기기억에 새 구조로 남는 것, 그것이 학습이다. 불러오기는 묶을 재료를 대고, 붙들기는 그 재료가 묶일 때까지 흘러내리지 않게 잡아 준다. 셋이 함께 굴러 새 합성 표상 하나를 짓고, 그것이 장기기억에 남는다. 연산은 작업공간에서 일어나고 그 결과인 상태 변화는 장기기억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이 세 연산이 굴러가는 작업공간은 좁고 휘발한다고 거듭 말했다. 좁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가로막고, 한 번에 들 수 있는 것이 적다는 사실이 왜 그토록 큰 차이를 만드는가. 세 연산을 세웠으니, 이제 그것들이 부딪치는 첫 번째 벽인 작업공간의 좁음을 본다.